본문 바로가기

기독교와 사회

불안한 노후, 나는 준비가 되었을까?

나이가 들면,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순간이 올지 알았다고...

 

지금까지 중력과 같은 어떤 힘이 나를 이끌고 왔음을

"드디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힘은 젊음으로부터 나오는,

또한 끝까지 버리지 못한 꿈으로부터 나오는, 

시들어진 한 육체를 소생케 하는,

마치 진노란색 농도의 수액과 같은 것이다.

 

그 수액을 받아 버티며 살기를,

어떤 하루는 계획들로 

어떤 하루는 계획들을 뒤짚고 모험을 생각하며

어떤 하루는 모험을 감행하며

어떤 하루는, 그래서 울고 웃고, 

어떤 하루는, 그래서 좌절하고 희망을 품고...

 

이런 반복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몇십년을 겪다보면,

속을 것 같지 않았던 내가,

단단히 속은 것 같고,

내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고,

내가 어리석은 인간이며,

이 세상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

"드디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냥 이리 저리 부는 공기와 같이 

저기 사람들에게 밟히는 흙들과 돌멩이들과 작은 벌레들처럼,

아주 흔한 것에 지나지 않아,

내 개인적 역사와 개인사가 줄 것 같은 독특함은 

빛을 잃고 점점 더 종말로 달려가는 것 같은 처참한 느낌을 맞이하는 것이다.

 

중력과 같은 그 어떤 힘이 나를 속여왔다면, 

그렇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일까?

 

나이가 들면 지혜롭게 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끝까지 지혜롭지 못할 것이어서,

또 어떤 하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의 노년은 준비되었는가? 

다들 먹고 살기 바쁘지 않은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럴 준비를 할 여유라도 있는가?

한 인간으로 그럴 준비를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나는 이 세상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 힘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여전히 맞춰 산다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대들과 나는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그대들과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 의지를 찾을 것인가?

 

놀라기 전에 찾아야 되지 않을까?

그 답을 찾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루를 또 거쳐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