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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련

성경은 왜 66권인가?

성경은 왜 66권인가?

유대교는 구약성경 39권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톨릭은 구약성경 46권, 신약성경 27권, 총 73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이단으로 유명세를 떨친 마르시온은 바울서신 10개와 누가복음(편집 본), 11개만을 성경을 인정했다. 우리 개신교는 구약성경 39권, 신약성경 27권, 총 66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39권인가? 73권인가? 11권인가? 66권인가? 

 

성경이 39권, 73권, 11권, 66권으로 정해졌을 때, 우리는 이에 대해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즉 누가 이것을 결정했으며,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결정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느 책에도 정경 목록이 66권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정경 목록이 인간들이 내린 결정일진대,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결정에 오류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냥 누구의 편을 들어 무조건 믿고 받아들여야 되는 것인가? 이것이 질문의 핵심인 것 같다. 

 


1. 정경 확인 작업

 

먼저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대교는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신약 성경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정경목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마르시온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유부녀와 불륜 관계)로 공의의 하나님이 강조된 구약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구약성경은 단지 유대인들만의 책이지 만인의 성경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독단적인 주장을 펼쳤기에, 우리는 마르시온이 주장한 정경 목록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범위는 좁혀졌다. 가톨릭의 73권이 맞는가? 개신교의 66권이 맞는가? 

 

 

이 질문에 대해 먼저 생각할 부분이 있다. 성경은 교회의 공의회 논의들을 통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은 공의회 논의들 이전부터 ‘이미’ 성경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공의회가 정경목록을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르시온 같은 이단들과 대항하여, 무엇이 정경인지 아닌지를 이제는 공개적으로 ‘확인해야’ 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역사의 움직임이 그렇게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교회 공의회들은 이미 초대교회부터 확증되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경에 대해 말 그대로 그 정경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만 했다는 것이다(많은 공의회 논의들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정되는 것은 4세기 말이다). 다시 말해 사도 시대 교회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정경들을 이후 공의회들이 확인을 했다(추인했다)는 것이다. 

 


 

2. 신약 성경의 경우 

 

먼저 신약성경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후대의 교회는 사도시대의 교회가 어떤 책을 신약 정경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비록 같은 사도 시대라고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인데, 도대체 어떤 기준들을 가지고 신약 정경을 확인할 수 있었는가? 그 구체적인 기준을 보자. 

 

그 기준은 사도성, 전통성, 도덕성이다. 

 

첫째, 사도성이란 어떤 책의 저자가 사도나 사도의 동료였는가를 묻는 것이다. 둘째, 전통성이란 어떤 책의 내용이 교회가 설립된 당시부터 교회가 사도들에게 전해들은 교리와 일치하는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셋째, 도덕성은 어떤 책의 내용이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마리아복음 등과 같은 책들은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

 


 

3. 구약 성경의 경우

 

그러나 문제는 신약성경이 아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공히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톨릭은 구약성경을 46권으로 보고 있으며, 개신교는 39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은 46권인가? 39권인가? 도대체 무엇이 맞는가? 

 

일찍이 유대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얌니아(Jamnia)에서 열렸다. 소위 ‘얌니아’ 회의이다. 이 회의의 목적도 어떤 책들을 정경 목록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의 정경이 46권이 아니라, 39권으로 확정되었다. 대신 39권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외경으로 분류시켰다. 

 

그럼에도 가톨릭은 외경 중 일부를 구약성경의 목록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가톨릭에서는 이것들(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을 '제2경전'이라고 부르며 정경으로 포함시켰다. 

 

가톨릭은 트렌트 공회에서 이 7권의 외경을 제 2경전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정경 목록에 추가시켰는데, 그러나 이 공회의 성격은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편파적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였고 일치된 의견도 아닌데도, 단지 프로테스탄트와 대항하기 위해 루터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실린 7권의 외경을 일방적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유대인들의 얌니아 회의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가톨릭이 정경으로 인정한 제 2경전들이, 원전인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외경'이라 부르며 정경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이유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것을 살펴보면,  

 

첫째, 이미 얌니아 회의에서 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외경을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외경이 집필된 시기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믿고 있다. 

 

둘째,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에서 인용한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았다. 간혹 성경의 기자들이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그 책들이 정경의 목록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2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셋째,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넷째, 외경의 어떤 부분들은 커다란 역사적인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섯째, 사해사본을 필사한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와 같은 권위를 외경의 책들에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기독교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상황과 추이, 이러한 것들로 판단해 보건데, 성경이 66권이라는 개혁주의 입장이 더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확고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일하시고, 그 인간 역사를 통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씀해 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우리 신앙의 백성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빛을 던져 주심으로써,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믿음의 눈으로 확실히 보여주시기 때문이다.